일상

이제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시간

얀코 2025. 5. 11. 21:00

사람이 태어나서 사회적 성인으로 인정받은 뒤에 하고 싶은 걸 하며 사는 시간이 짧게는 20년 길게는 40년 정도라고 생각한다. 물론 누군가는 더 오래 살 수도, 혹은 생계 때문에 더 적은 시간만 가질 수도 있다. 아무튼 내가 유저 패치를 만들면서 썼던 시간은 아마 짧게 잡아도 10년은 넘었으리라 생각된다. 여기를 만든 지도 벌써 13년이 지났으니 나는 내 생애 1/3 이상을 이곳을 가꾸고 패치를 만드는 데 써왔다.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고 했던가. 어려운 말 써서 죄송한데, 만남에는 헤어짐이 있고, 헤어지면 다시 만난다고 한다. 여기도 이제 슬슬 정리를 해야 하는 시간이 오는 것 같다. 내가 했던 이곳에서의 뻘짓, 누군가가 봤을 때 불쾌한 게 있으면 미리 사과드린다. 고집이 엄청 세고 내가 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던 바보 같은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지금도 남아있을 수 있다. 그리고 티스토리는 이제 순수했던 그 시절의 모습이 하나 둘씩 사라져 간다. 별별 광고와 AI같은 댓글이 진드기처럼 달라붙는다. 그분들도 열심히 살려고 그러는 거니 나도 뭐 말은 못하겠지만 여기에 있기 싫어진다. 떠날 때가 온 거다. 10년 넘게 이곳에 있었으면 이제 염치를 알고 떠나라 하는 신호 같기도 하다. 

 

유저 패치는 이제 회고록이나 정리를 좀 더 구체화해야 겠다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가튼 사가도, 징기스칸 4도 정말 미친듯이 하루에 시간이 날 때마다 만들기만 해놓고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얘네들이 무슨 원리인지, 기획자는 무슨 생각으로 만들었는지 전혀 정리를 하지 않았다. 얘네를 구체화한다면 다른 분들이 흥미로워할 내용을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유저 패치를 만드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최근 악튜러스 유저 패치 개발자 분이 여기에 직접 방명록 글을 쓰시면서 알게 되었다. 부끄럽지만 나를 통해 유저 패치를 만들고 싶다는 분들이 그 분처럼 계신다면, 내 노하우나 경험을 전달하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런 걸 정리한다면 여기에 올리거나 혹은 책을 통해, 다른 매체를 통해 전해드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제까지만 해도 징기스칸 4 성 구조를 이리 뜯고, 저리 뜯다가 컴퓨터 AI의 일부 조건이 안 맞아 완성된 걸 갈아 엎었다. 그래도 이걸 하는 이유는 완성된 걸 볼 때의 그 쾌감이다. 아무런 문제 없이 성장한 프로그램의 난이도 상승과 작동 AI의 발전을 보면 기분이 흐뭇해진다. 그리고 포가튼 사가 때는 유저들의 호응도 나에겐 큰 힘이었다. 그 쾌감도 결국 자극이고, 자극에서 벗어나면 또 허무해진다. 5년 전 쯤에 포가튼 사가를 거의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완성을 시켰을 때도 비슷한 감정이었는데, 이번에도 또 그런 감정이 느껴진다. 허무한 감정... 그리고 다시 반복되는 패치 중독...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맨날 '끝입니다. 마무리입니다. 마지막 유저 패치입니다' 라고 했던 건 다 진짜다. 무슨 호객행위마냥 보일 수도 있는데, 정말 그때는 끝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밸런스 패치의 끝은 없다. 그냥 내가 손을 떼야 끝인 것이다. 손을 떼자. 그리고 나는 이제 가정이 있다. 가장의 무게... 외면할 수는 없고 한량처럼 살 때도 지난 것 같다. 그리고 여기는 정말 일기장으로서, 내 개인적인 공간으로 남겨놔야 겠다. 

 

이제 세월의 흔적에 닳아 허름한 노포같은 이곳에 가끔 오시고 구경하시는 많은 분들의 건강과 행복을 빕니다. 그럼 즐거운 한 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