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레이트(몽골어: ᠬᠡᠷᠡᠶᠢᠳ)는 몽골 제국 이전 시대에 몽골 고원 중북부 한가이 산맥 부근에 흩어져 살던 유목민 부족의 집단이다. 한자로는 객렬액(客烈亦), 겁렬(怯烈), 겁렬액(怯烈亦) 등으로 표기되었다. 페르시아어 사료에는 키라이트(페르시아어: كرايت)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케레이트(Kereyid~Geryid)라는 이름은 케레이(Kereyi~Gereyi)의 복수형이다. 라시드웃딘의 『집사』(集史)에 따르면, 「케레이」의 의미는 그 선조의 얼굴 색이 검었다는 데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어, 「까마귀」의 몽골어인 케리예(keriye)에서 유래했다고 보인다. 오르도스에는 지금까지도 퀘리트(K'erit)라 칭하는 대(大)・소(小)・흑(黒)・백(白)의 소규모 유목집단이 잔존하고 있으며 키르기스족 가운데서도 Kiräi~Giräi라는 이름의 유력 씨족이었다고 여겨진다. 테르킬(쥬르킨), 톤카이트(콘카이트), 튜마왓(토베엔), 사키아트(사카이트), 에리아트(알바트) 그리고 케레이트의 여섯 씨족으로 구성된 케레이트는 지배층인 케레이트 씨족의 성씨를 따서 그 부족의 이름을 통칭하였다.

 

케레이트의 기원은 위구르 제국(회흘)를 멸한 키르기스 제국(힐알사)를 몽골 고원에서 쫓아낸 몽골계 부족 집단{구성(九姓)타타르} 가운데서도 가장 유력한 종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케레이트의 선조에 해당하는 이들 부족은 함께 키르기스를 몰아낸 위구르 분파인 나이만 연합과는 몽골 고원을 놓고 치열하게 다투었다. 이슬람 학자 아부 하라지에 따르면 11세기 초 케레이트는 온구트, 나이만 등 서쪽 유목 부족들과 함께 네스토리우스파 크리스트교를 신앙하며 위구르 문자를 사용하고 문화적으로 앞선 부족이 되었다고 한다.

 

1196년 봄, 예수게이 바토르의 아들 테무진이 자라 여러 부족장이 되었다는 소식에 토오릴 칸은 그를 만나기 위해 구세우르 호수에 나갔다가 테무진과 회견할 수 있었다. 테무친은 아버지의 옛 친구를 반갑게 영접했고 속하에서 징수한 가축세를 주었다. 그 가을 테무진은 토라 강에서 연회를 열어 토오릴과 부자의 연을 맺었다. 그 뒤 케레이트의 쥬르킨 씨족으로 진군하고 두 수령 사챠 베키와 타이츄를 포로로 잡았다. 또 타타르의 수장 메그진 세울토 등이 금(金) 왕조의 의논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금의 왕경승상(王京丞相)이 군대를 이끌고 타타르 토벌을 시작했다. 이것을 들은 테무진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절호의 기회로 생각하고 동맹자인 토오릴 칸과 함께 타타르의 메구진 세울투가 있는 곳으로 쳐들어갔다. 메구진 세울투는 성채를 쌓고 농성했지만, 테무진군에 붙잡혀 그 자리에서 살해됐다. 이것을 들은 왕경 승상은 크게 기뻐하며 테무진에 쟈우토크리라는 칭호를, 토오릴 칸에게는 온(왕)이라는 칭호를 주었다. 이후 토오릴 칸은 옹 칸(OngKhān)라고 불리게 되었다.

 

1203년에 마침내 테무진과 케레이트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고 양측은 완전히 갈라섰다. 가을에 테무진은 옹 칸 부자를 테테르 운듀르 산에서 기습해 격전 끝에 옹 칸은 달아나고 나이만의 땅을 지나다 옹 우손이라는 땅에서 나이만 국경 경비대장에게 살해되었다. 그들은 옹 칸의 목을 나이만 왕에게 보냈고 나이만 왕은 옹 칸을 죽인 것에 노해 그 목을 은 그릇에 담아 보존하였다. 아들 일카 센겐은 게리 토벳 지방으로 망명했지만 그곳에서 약탈을 벌이다 현지 주민의 분노를 사서 카슈가르와 호탄 여러 주에 가까운 쿠샨 지방으로 넘어갔다가 쿠샤트 챠르 카슈메라는 땅에서 잡혀 그곳 영주 카라지 족의 술탄 키리지카라에게 처형당했다.

이로써 케레이트는 몽골에 정복되었으며 이후 몽골에 흡수된다.

 

1206년 테무진이 칭기즈 칸으로 즉위하는 몽골 제국이 성립한 뒤에도 케레이트는 칭기즈 일문의 인척으로써 몽골 유목 부족 연합의 유력 부족의 하나로 존속하였다. 칭기즈 칸의 넷째 아들 툴루이의 부인으로 몽케 칸(원 헌종), 쿠빌라이 칸(원 세조)의 어머니가 된 소르칵타니 베키는 쟈하감보의 딸이자 옹 칸의 조카다. 일 칸국이 다스린 서아시아에서 시기에 따라서는 기독교인이 우대되는 등 몽골 왕가의 기독교도에 대한 호의적인 자세는 케레이트 왕족과 귀족들을 통해 몽골 제국의 왕족, 귀족에 수많은 기독교인이 포함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또 케레이트 출신으로 몽골 제국에서 군인, 관리로 활약한 사람도 적잖이 역사에 나타난다. 예를 들어 우구데이 칸(원 태종) 때에 서기 관리(비치크치)의 장관으로 활약한 진카이는 출신에 대해 여러 설이 있지만, 케레이트 출신이라고 하는 설이 존재한다.

몽골 고원에서 케레이트 부족의 이름은 제국의 해체와 함께 이윽고 그 이름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단, 15세기 이후 오이라트 부족 연합에 속하며 현재도 존속하고 있는 토르구트는 케레이트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몽골 제국의 확장과 함께 중앙 유라시아 전역으로 확산된 케레이트 부족의 이름은 몽골 고원보다 서쪽 지역에서 더 오래 남았고, 현재도 카자흐스탄 등 중앙 아시아의 투르크인들 사이에서 케레이트의 이름을 찾을 수 있다.

 

문화 아이템

목양견(목축 +8)

 

난이도

★(몽골과 자다란이 서로 견제하는 동안 몽골의 뒤를 치는 전략이 중요. 이 때 몽골을 격퇴하지 못하면 꽤 힘들어 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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