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만쟁이
난 어렸을 때부터 '왜' 라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초등학교 때였나? 손을 들어서 선생님의 질문에 항상 왜 그런지를 물어보는 나를 보고 어머님은 크게 될 아이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내가 얼마나 크게 되었는지는 다음 지면이 주어진다고 하면 그 때 이야기하도록 하고, 그 때 왜를 궁금해하던 아이는 중학교 때 자극적인 게임의 맛에 눈을 뜬다. 당시 컴퓨터를 못 하게 했던 부모님 덕분에 나는 게임보다는 게임 책을 자주 읽었는데 그중에서도 게임 리뷰를 많이 읽었다. 게임이 뭐가 부족한지 지적하는 내용을 보면서 통쾌함이 느껴졌다. 게임에 대한 불만을 재미있게 써 내려가는 기자들의 글을 보고 나선 아, 나도 게임 잡지 기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머리가 좀 굵고 나서는 점점 구체적인 불만들을 표출했다. 예를 들면 내가 일하고 있는 곳에서는 일부 수당을 법적으로 주지 않는다든지, 혹은 최저 임금을 주지 않는다든지, 군대에서 후임에게 폭력을 쓴다든지… 부당한 것들이 있을 때마다 나는 항의했고 돌아오는 건 내가 빌거나 무시당하거나 혹은 거의 왕따가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머리가 더 커서는 효율적으로 항의를 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간혹 몇 번은 운 좋게 항의가 받아들여져 나를 포함한 사람들이 혜택을 누리기도 했다.
내가 세상에 항의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시스템 속에서 어떤 말을 쉽게 꺼내지 않고 순응한다. 그리고 몇몇 소수는 강자의 편을 따른다. 마지막으로 거기에 희생되는 극소수가 있다. 예전에 청년 수당이 최초로 도입되었을 때 말도 안 되는 룰이 있었고, 나는 직접 도청으로 찾아가 해결했던 경험이 있다. 당시 수당을 받는 사람을 모은 단톡방이 있었는데 거기에 어떤 룰 때문에 피해를 보는 분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지금의 시스템을 옹호하고 피해자의 무지함과 멍청함을 비꼬며 혐오 발언을 했고,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았던 그 분은 대화방을 나갔다. 내가 그곳의 문제를 해결한 건 한참 뒤의 일이었지만 나는 그 에피소드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게임은 하나의 세계
게임이 나오기 전, 영화와 스포츠는 시민들의 눈과 귀를 유혹하는 콘텐츠 중 하나였다. 다만 영화는 경쟁 요소가 없이 서사를 통해 주인공의 심정을 대리만족하는 형태였고, 스포츠는 반대로 다른 팀과 경쟁하며 자신의 팀에 소속감을 느끼지만 어떤 이야기를 담지는 못했다. 둘은 비슷하게 결핍된 부분이 있었다. 바로 ‘나’이다. 참여자는 대리자를 거쳐 체험하며 그 결과, 온전히 그 체험을 내 것으로 하기는 힘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게임은 모니터에 나를 대신하는 무언가를 직접 움직일 수 있었고, 영화와 스포츠가 융합된 복합 엔터테인먼트가 되었다.
게임은 나를 대신하는 아바타, 그리고 그 아바타에 영향을 주는 변수로 이루어진다. 화면에 등장하는 무언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화면에 등장하여 나에게 자극을 준다. 그것이 움직이는 형태의 무엇이든, 혹은 대화를 선택하는 방식으로든 말이다. 결국 우리가 맞닿아 있는 현재 세계와 거의 비슷한 느낌을 게임에서 느낄 수 있다. 그것이 우리가 게임을 하는 이유이다. 어떤 체험이 될 수도 있고, 도피처도 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또 다른 세계를 찾는 방랑자가 되어 게이머라는 명찰을 붙이고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다. 마치 더 나은 땅을 찾아 헤매는 철새처럼.
대부분의 게이머는 자기가 좋아하는 게임을 한다. 그리고 싫어하는 게임은 하지 않는다. 나도 머리가 굵어진 20대 후반부터는 오로지 내 취향인 게임만 즐긴다. 그리고 거기에 만족한다. 다만 나 같은 불만쟁이는 게임을 하면서 불만이 생긴다. 아이템이 버려지는 것 같은데? 이 캐릭터는 너무 약한데? 이 마법은 너무 센데? 등 다양한 불만이 게임을 하며 떠오른다. 나는 내가 선택한 세상이 적어도 다양한 선택지를 가지길 바란다. 무엇을 선택해도 유저 입장에서 재밌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게 나는 좋다. 적어도 버려지는 루트가 없다면 게임을 몇 번은 더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유저는 다양한 자극을 받을 수 있다. 내가 게임 밸런스 패치를 만든 건 그런 이유에서 시작되었다.
다만, 게임은 데이터로 이루어져 있고 그 데이터는 숫자로 표시되며 숫자는 게임 내 차별을 만들어낸다. 1은 죽었다 깨어나도 2를 이길 수 없다. 그래서 개발자는 랜덤이라는 요소를 넣기 시작했다. 공격 대미지가 1부터 10 사이의 값이 나오는 무기의 평균 대미지는 5.5다. 이는 공격 대미지가 5에서 6이 나오는 무기의 값과 같다. 하지만 둘의 최대 공격력은 차이가 날 것이며 안정적인 걸 원하는 유저는 후자를, 한 방을 노리는 유저는 전자를 택할 것이다. 랜덤 요소를 하나 넣었을 뿐인데 유저에게 다양한 선택지가 생겨났다. 만약 공격력이 오로지 1인 무기와 2인 무기가 있고 다른 변수가 없다면 공격력이 1인 무기는 버려질 것이다. 이건 게임의 지속성과 다양성을 파괴하는 안타까운 일이 된다. 게임 패치는 이런 랜덤 값처럼 지속성과 다양성을 만드는 걸 목표로 만들어졌다.
아쉽게도 차별을 긍정하는 유저도 있다. 모든 마법이 4에서 6 사이의 대미지를 주는데, 어느 마법 하나만 대미지가 20이라고 하자. 그 마법을 획득할 수 있는 직업은 밸런스를 망가트리며 모든 몬스터를 쉽게 처리할 수 있다. 그러면 유저는 불합리하다는 생각보다는 이 마법을 얻고 싶게 된다. 다른 마법을 못 써서 아쉬운 게 아니라 약한 마법이라고 비아냥거리고 무시하게 된다. 몬스터 역시 마찬가지다. 해당 마법 한 방에 쓰러지는 몬스터를 조롱할 것이다. 게임 데이터는 상수이기 때문에 조금의 차이로 무조건 이기는 쪽과 무조건 지는 쪽이 나뉘어 진다. 이건 차별과 혐오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리고 유저는 그걸 즐기기도 한다.
포가튼 사가의 세계
포가튼 사가라는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은 오픈 월드라는 것이다. 이런 게임에서 유저는 정해진 시나리오 없이 여러 지역을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다. 당시 대부분의 게임이 정해진 흐름에 맞게 자신의 캐릭터를 이동시켜야 한다는 제약이 있었다는 걸 감안하면 이러한 이동 방식은 획기적이었다.
다만 모든 곳을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개발자는 유저의 레벨이 낮더라도 진입할 수 있도록 게임 내 몬스터의 레벨이나 공격력을 낮추었다. 따라서 자유로운 대신 게임의 긴장감은 다소 떨어졌다.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유저들은 점점 쉬워지는 게임을 아쉬워했다. 게임이 조금 더 어려워진다면 재밌어질 거라는 생각을 하나둘 하기 시작했고, 나는 직접 게임을 고치기로 마음먹었다.
게임을 고치기 시작하니 눈에 안 보이던 것들이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 급하게 게임을 내놓는 바람에 밸런스가 안 맞는 부분이 존재했다. 일부 마법이나 필살기가 과도하게 셌던 탓에 직업 간 불균형도 존재했으며 무기도 양손 검이나 도적 무기는 효율이 떨어졌다. 결국 사용하는 무기, 사용하는 직업만 사용하게 되었고 이러한 부분을 참다못해 수정하게 되었다.
HEX 에디터로 게임을 수정하게 된 건 아주 초보적인 작업이었다. 게임의 DAT 파일이나 EXE 파일을 HEX 에디터로 읽은 뒤, 수정하고 싶은 값을 16진수로 변환해서 검색한다. 그리고 그 값을 수정한 다음에 게임 내 반영이 된다면 수정하고 싶은 값을 찾은 게 된다. 이 간단한 작업을 하는데 일주일, 혹은 한 달을 꼬박 새운 적이 있다. 20대라 할 수 있었던 일이지, 지금 하라고 하면 절대 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내놓은 게임 패치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다. 어려워진 게임을 클리어한 걸 자랑하며 댓글을 다는 분이 계셨는데, 항상 장문의 댓글을 길게 적어주셨다. 그리고 이걸 어떻게 깼는지 자세하게 적어주셨다. 그때만큼 패치의 성취감을 느낀 적은 없었다. 다른 사람과의 경쟁이나 대결이 아닌, 나와 나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극복의 이야기를 RPG라고 정의한다면 사람들은 더 어려워진 게임을 불합리함보다는 내가 극복해야 하거나 성취해야 할 대상으로 이해하고 기쁘게 받아주셨다.

물론 유저들을 고려해서 총 5개의 버전(순한 맛, 보통 맛, 매운 맛, 진짜 매운 맛, 진짜 진짜 매운 맛)을 내놓았었다. 이건 내가 생각한 게 아니라 유저들의 요청이었다. 게임이 너무 어렵다는 유저를 위해 쉬운 버전을 만들었다. 그리고 예전 같은 강력한 마법을 사용하고 싶은 유저가 있어 마법 관련해서는 원본 버전을 따로 공유했다. 신기하게도 아이템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는데, 사실 아이템은 다른 이유가 있었다.
아이템은 계급을 나눠서 분류해야 했다. 왜냐하면 하나의 아이템 값이 다른 아이템 값과 공유되어 있었다. 예를 들면 파이어 액스라는 무기의 공격력은 단검과 공유된다고 치자. 파이어 액스는 후반부에 나오는 레어 아이템으로 랜덤 박스에서 유저들이 획득하면 버리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이 무기의 공격력을 올린다면, 기본 무기인 단검의 공격력도 올라가 아이템의 체계 자체가 망가진다. 그래서 무기 종류를 노멀, 매직, 레어, 유니크로 구분하고 게임 후반으로 갈수록 더 강한 아이템이 된다는 설정을 뒀다. 물론 같은 레벨에서는 무기 데이터의 총합을 동일하게 해서 선택할 수 있는 재미를 주었다. 예를 들면 양손 무기의 공격력이 20, 정확도가 10이라고 한다면, 한 손 무기의 공격력은 10, 정확도는 20, 이런 식으로 차별화를 두었다. 실제 포가튼 사가 유저 패치의 파이어 액스는 그래서 겹치는 값이 아닌 다른 값을 찾아서 수정했다. 위에서 말했던 랜덤 값과는 조금 다른 결이긴 하지만, 어쨌든 아이템은 무기 선택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총합은 같지만 세부 값은 다 다르게 하는 걸 목표로 했고 유저는 거기에 불만을 표시하지는 않았다.
캐릭터는 조금 더 세심하게 관리를 해야 했다. 유저들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인 싸울아비 캐릭터의 경우, 무도가인데도 필살기가 화려하고 공격력이 세 다들 선호했다. 이런 경우의 밸런스 조절은 공격력을 낮추면 될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유저들이 싫어할 것 같았다. 그래서 체력을 낮추는 방식을 선택했고, 그 선택은 나름 유저들이 받아주었다. 캐릭터의 차별화는 강한 캐릭터에게는 약점을 더 부각시키고, 약한 캐릭터에게는 강점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적어도 유저들은 자신이 원하는 캐릭터의 강점은 그대로 느낄 수 있어 불만이 있지만 큰 뜻을 이해하고 게임을 즐겨주었다.
10년 정도 포가튼 사가 패치를 만들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내가 유저와 함께 원하는 이상향을 만든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유저는 불만이 있는 부분을 나에게 댓글로 말해준다. 그리고 나는 그 댓글을 파악한 뒤 정말 문제가 있으면 고쳤고, 문제가 없거나 다소 불합리한 요구에는 기준을 이야기하고 불가능하다는 말도 전달했다. 포가튼 사가 팬 홈페이지와 내 블로그를 통틀어 거의 약 1,000개가 넘는 댓글과 장문의 리뷰 글이 때때로 올라왔다. 어떤 세계를 10년간 바꾸고 또 유지하는 건 나에게 있어서는 다시 오지 못할 꿈만 같은 시간이었다.
징기스칸 4의 세계
어렸을 적부터 역사 게임에 관심이 많았고, 대학교 전공을 사학과로 선택해 자연스럽게 역사 게임에 눈이 갔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에 한국이 등장하는 게임을 찾다가 자연스럽게 징기스칸 4를 접하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큰 비극이었다.
징기스칸 4는 포가튼 사가와 다르게 나를 중심으로 두는 이야기가 아니다. 포가튼 사가가 자신의 이름을 입력하며 나의 성장과 극복을 이야기하는 게임이라면, 징기스칸 4는 역사 속 누군가에 자신을 대입해서 세계를 정복하는 게임이다. 파티를 모아 적을 물리치는 협동 게임이 아니라, 자신의 국가를 선택해 군대를 모아 영토를 빼앗는 이기적인 게임인 것이다. 이런 게임들은 대개 우익적인 요소가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이 게임의 개발자는 모두 일본인이었다.
2005년 문화관광부의 2004년 국정감사 결과에 따르면, 징기스칸 4라는 게임은 역사 왜곡 내용이 확인되어 재고 물량이 전량 소각되었으며, 향후 추가 제작, 유통을 금지하도록 유통사에 약속을 받은 게임이다. 지금 징기스칸 4를 즐기는 유저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기도 하다. 오히려 해당 게임은 지금도 일부 유저들에게는 명작이라고 불린다.

이 게임의 레벨 디자인은 일본 유저를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다. 난도가 낮은 지역인 아시아를 넘고, 그 다음 난도인 중동을 넘어, 난도가 가장 높은 유럽 지역을 클리어하면 전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 실존 인물을 난이도의 도구로 사용해 레벨 디자인을 하는 것 자체도 윤리적으로 봤을 때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이 게임은 실존 인물을 난이도의 도구로 사용하였다. 그러면 인물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레벨 디자인을 할 수 있을까? 바로 인물의 평가다. 인물의 평가는 오로지 개발자의 주관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아시아의 인물은 평가를 낮게 하고, 유럽의 인물은 평가를 높게 하면 쉽게 해결된다.
예를 들어 2명의 인물이 있다고 치자. 둘 다 군사를 이끌고 적과 싸워 이겼다. 그런데 한쪽은 이긴 부분만 부각해서 소개하고, 다른 한 쪽은 왕에게 쫓겨나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고 소개한다. 그런 뒤 평가를 100점 만점의 90과 60으로 각각 평가한다. 이러한 평가 방식은 이 게임의 주된 특징으로 레벨 디자인을 위해 인물을 왜곡하지 않았는지 의심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이 부분은 게임의 속편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정말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은 어떻게 하느냐? 몽골이 주인공인데도 불구하고 몽골은 세계를 정복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몽골의 라이벌 세력을 아주 강력하게 설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할 경우, 몽골은 확장하지 못하고 자리를 머무는 한편, 일본은 그사이에 아시아와 인도를 침략한다.
일본이 아닌 국가를 선택하고 싶은 유저가 있을 수 있다. 이 게임의 개발자는 그런 것을 막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였다. 우선 일본 이외 지역의 인물 외모를 매우 못 생기게 묘사했다. 그리고 인물 이미지 수도 크게 차이 난다. 지역마다 얻을 수 있는 가상 인물이 있는데 이 인물들은 이미지 몇 장을 돌려서 쓴다. 고려, 티벳의 경우 10장의 가상 이미지가 있지만 일본은 총 44장의 가상 이미지를 쓴다. 거기에 일본 인물은 예외로 10장 정도의 이미지를 더 쓴다. 매번 같은 얼굴의 인물이 나오는 지역과 새로운 얼굴이 나오는 지역 중 어디를 선택할 거냐고 물어본다면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그리고 지역 고유의 건물이 있는데, 일본 건물이 가장 크고 화려하다. 다른 지역의 건물은 작고 초라해 보여 선택하기가 꺼려진다. 또 병사의 묘사도 묘한 부분이 있다. 우선 각 지역을 대표하는 병사는 일본, 몽골, 유럽을 들 수 있다. 다른 지역에서도 얻을 수 있는 병과가 있지만 ‘화포병’이나 혹은 ‘코끼리병’ 등 그 지역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일단 몽골 병사는 갑옷이 초록색과 빨간색으로 표시되어 약간 촌스러워 보인다. 더 중요한 건 병과 버그가 존재해 도시가 발전해서 공격력이 올라가면 해당 병과의 무기 공격력이 0에 가까워진다. 공격하지 못할 수 있는 군대를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유럽 병사는 의도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애니메이션 일부가 뒤섞여 보기 불편할 때가 있다. 서 있다가 갑자기 쓰러질 듯한 모션을 취하기도 하고, 도끼로 적을 때리는 게 아니라 적을 문지르는 듯한 모션을 취한다. 따라서 온전하게 쓸 수 있고 시각적으로 멋져 보이는 병사는 일본 병사가 유일하다. 여기에 일본 병사들만 이펙트를 추가해서 훨씬 화려하게 보인다.
그 외에 전 세계를 표시한 맵에서도 일본 지역의 땅은 초록색과 노란색을 섞어 매우 매력적으로 나오지만 중국과 한국, 아시아 지역은 흙색과 칙칙한 녹색을 섞어 부정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또 맵에서 등장하는 유닛은 모두 왼쪽으로 바라보는데 유닛이 오른쪽으로 이동해도 오른쪽은 보지 못한다. 쉽게 말해 모든 유닛은 일본 반대 방향을 향하고 일본 방향을 향하지 못한다. 이렇게 꼼꼼하게 한 쪽을 미화하는 게임을 유저는 역사 게임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러한 부분보다 훨씬 더 유저에게 유해한 것은 이 게임이 가진 프레임이다. 이 게임의 프레임은 2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국가에 대한 프레임, 둘째, 힘에 대한 프레임이다.
국가에 대한 프레임은 단순하다. ‘문약’이라는 논리, 즉 글로 다스리는 나라는 약하다는 논리가 게임 속에 들어가 있다. 실제로 그 당시 가장 세계에서 부강한 나라로 알려진 송(남송)의 경우, 정치 능력만 높고 나머지 능력은 모두 낮은 인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게임을 플레이하면 이 나라는 단 몇 분 만에 점령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송나라는 많은 장군들이 있었고 몽골에 대항해 끝까지 맞서 싸웠다. 1235년부터 1279년까지 약 44년을 싸운 걸 생각하면 ‘문약’은 제국주의 시대의 침략 도구로 사용되는 언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고려를 포함한 아시아 지역 대부분의 문명국은 ‘문약’으로 규정하고, 유목 국가의 경우에는 도시 문화 수치를 극도로 낮게 묘사하며 부정적으로 표현하거나 높은 능력을 주지 않았다. 당연히 이러한 속뜻을 모르는 유저는 해당 국가에 대한 선입견이 생긴다.
힘에 대한 프레임은 반대로 정치를 비하하는 쪽으로 활용되었다. 이 게임의 클리어 조건은 오로지 적과 싸워서 도시를 점령하거나 적 국가에 항복 선언을 받는 것이다. 이 게임에서 인물이 가진 능력은 총 3개로 정치, 전투, 지모로 나뉜다. 전투는 적과 전쟁할 때, 지모는 적과 외교를 할 때 사용된다. 정치는 어디에 사용이 될까? 자국의 건물을 짓는 데만 활용된다. 그리고 정치가 낮아도 건물을 지을 수 있으며 단지 1~2턴을 빨리 짓거나 늦게 짓는 차이다. 결국 정치가 높은 인물은 게임에서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한다. 실제 역사에서는 정치를 얼마나 잘하는 지에 따라 그 나라의 운명이 바뀌었지만 이 게임에서는 오로지 힘만이 그 역할을 다할 뿐이다. 칼로 나라를 세운 일본이나 몽골 등이 당연히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그리고 무력이 있는 나라가 최고라는 인식도 여기서 세워진다.
그 외에도 몽골 군을 휩쓴 태풍을 신격화해 고정 이벤트로 못 박거나 한국 유통사가 개입한 게임임에도 고려 명종을 외세의 침략에 벌벌 떠는 옹졸한 군주로 묘사하는 등 게임은 일본 우익을 대변하고 한국을 비하하였다. 실제 게임을 하면 고려 군 10부대가 가도 일본 도시를 점령하기 힘들다. 하지만 일본 군 1부대가 바로 고려를 정복할 수 있다. 심지어 일본 도시는 3개, 고려 도시는 1개다. 더 웃긴 건 당시 영토도 아닌 홋카이도와 오키나와가 일본 영토로 표시되어 있다.
나는 이러한 게임을 바꾸기 위해 2018년부터 약 6년간 패치를 만들었다. 일본 극우 게임을 일반적인 게임으로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위에서 보이는 부분 중 대부분은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었다. 왜 나는 이런 게임의 패치를 만들었는가. 너무 슬프게도 어렸을 때 이 게임을 접했고 이 게임이 친숙하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함께 간 야구장, 축구장에 저절로 발이 가듯 게임도 어렸을 때 접한 게임은 현재에도 영향을 준다. 어쨌든 위에서 언급한 요소는 대부분 제거한 패치를 만들어서 포가튼 사가 때와 마찬가지로 배포했다. 포가튼 사가 때처럼 반응이 있었을까?
결론만 말하면 내가 만든 패치는 그렇게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나는 왜 내 패치가 외면받았는지를 생각하다 이 게임을 하는 유저층은 어떻게 되는지 추측했다.
1. 고려가 되어 힘든 상황을 극복하는 재미를 즐기는 유저
A. 약소국이지만 큰 국가를 이긴다. 나는 다르다. 일본을 반드시 넘어서겠다
2. 일본이 되어 다른 나라 군대를 학살하는 재미를 즐기는 유저
A. 일본 건물이 예쁘고, 일본 유닛이 멋지고, 일본 인물이 다양하다
3. 그 외 몽골, 유럽이나 다른 지역에 흥미를 느끼는 유저
내가 봤을 때 대부분의 유저는 1번이나 2번에 만족하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이 게임이 일본 이외 지역의 묘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 유저라면 당연히 한국 역사와 관련된 고려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도 고려에 불만이 많았지만 이러한 걸 극복하면서 고려나 한국을 타자화하는 경우를 보았다. 나와 고려를 분리해서 보는 것이다.
이런 점은 나를 일본 사람에 대입하거나 한국을 구할 영웅으로 대입하면서 실제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다른 곳에 둔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제국주의 시대를 지나 서양의 옷을 입고 서양인의 정체성에 맞춘 2등 국민에서 이제 일본인의 정체성까지 받아들여 3등 국민으로 한 단계 더 내려가는 인상을 받았다.
이건 타인이 아니라 나에 대한 평가다. 나는 스스로 자신을 타자화해서 본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항상 한국과 일본의 경기 결과를 보며 한국이 이길 때마다 환호했다. 이건 한국인이라면 쉽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하지만 나는 더 나아가 한때 일본이 평가하는 한국에 흐뭇해하기도 했다. 일본을 통해서만 나의 존재를 느낄 수 있고 만족한다면 나는 일본이 없다면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는 ‘일본인에게 평가받는 나’를 좋아하는 게 일본 게임을 즐겨하면서 체득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느껴 패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징기스칸 4에서 일본은 아름답고 멋지게 묘사되며, 고려는 보잘것없는 국가로 묘사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일본으로 학살하거나 고려로 열등감을 넘어서는 것에 큰 자극과 재미를 느낀다. 결국 내가 만든 패치는 그러한 자극을 만족시키기보다는 더 둔화시키는 패치가 되었다. 하지만 그게 실패한 패치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국가를 선택해도 차별이 없도록 게임 밸런스를 수정하고 나자 내 스스로 일본인보다 낮은 한국인, 평가를 받아야 하는 한국인이라는 타자화를 벗어낼 수 있었다.
진짜 세상에서의 타자화
그렇다면, 우리는 게임 속 세상에서만 자신을 타자화하고 있는 것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게임 속 세상에서의 타자화는 진짜 세상의 타자화를 모방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징기스칸 4는 일본에 대한 과장된 묘사로 그걸 플레이하는 유저를 일본화하지만, 반대로 일본에서 그런 게임이 나온 건 현실이 일본인을 타자화하기 때문이다. 이건 비단 일본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제국주의 국가의 침략 이후 서양의 방식으로 생각하고, 서양의 옷을 입고, 서양의 룰을 따른다. 정치, 경제, 예술, 스포츠 등 모든 것은 서양 사람들이 익숙한 것을 따르고 있다. 예를 들면 테니스 세계 대회는 있어도 쥐불놀이 세계 대회는 없다. 일주일에 한 번 유교 모임을 가진 뒤에 삼강오륜을 파괴하는 무법자를 지역의 연대와 관심으로 교화하고 있는가? 그건 아니다. 결국 서양의 기준이 곧 세계의 기준이다. 그렇게 우리는 이미 자기 스스로를 타자화하고 있다.
그러한 모든 행위와 관습들로 자신을 씌우는 것을 요즘은 프레임이라는 단어를 쓴다. 어떤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 이것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 프레임은 공기와도 같아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어찌 보면 게임은 그런 세상 속 타자화를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도피처이기도 하다.
게임에는 성별이 없고, 빈부가 없고, 나이가 없으며, 피부색이 없다. 오로지 데이터로 표시된 자신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게임에 빠져든다. 자신을 새롭게 규정하고 데이터 혹은 실제 사람과 자극을 주고받으며 현실에서 멀어진다.
그리고 게임 밸런스 패치를 만드는 이유
게임은 타자화를 이겨낼 수 있는 도피처이지만, 타자화를 더 심각하게 경험할 수도 있다. 위에서 심각해질 수 있는 어떤 게임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은 엄청난 경쟁 사회이며 어렸을 때부터 꾸준하게 사람을 타자화하며 살아간다. 성적으로, 학벌로, 사는 동네로…. 그런 영향을 받으면 무심코 게임 제작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게임 밸런스 패치를 만들 수 있다. 적어도 이상하다 싶은 게임은 내가 직접 손을 볼 수 있다. 선거는 4년, 혹은 5년을 기다려야 하지만 게임 수정은 지금 바로 할 수 있다. 내가 게임 패치에 빠져 있는 건 다른 시각으로는 세상을 향한 투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세상은 다양한 프레임들이 존재하고 그것이 사람을 엮고 있다. 나는 조금이나마 그 프레임을 바꾸는 작업을 게임 밸런스 패치를 통해서 한다고 생각한다. 게임을 경험하면서 어떤 걸 선택해도 괜찮고, 어떤 무언가는 다른 무언가와 평등하고 같다는 인식이 생기면 사람을 대할 때도 바르게 대할 수 있다는 확신이 나에게는 있다. 인간은 경험을 통해 각자의 프레임을 만들고, 그 속에서 자기 생각을 한층 더 강화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은 사람이 접하는 프레임 생성기 중 가장 강력한 생성기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 프레임을 수정하며 세상과 투쟁하고 있다.
출처 :
https://anacreon.tistory.com/90
https://www.mcs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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