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선 다양한 물건과 다양한 사람이 한데 모여 얽히고 섞인다. 그리고 부족한 사람이든 넘치든 사람이든 각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삶을 영위하고 즐긴다. 

 

게임은 그렇지 않다. 게임 속의 아이템, 캐릭터는 철저히 성능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평가한다. 심지어 게임 속 아이템, 캐릭터는 계급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 계급들 중 가장 좋은 캐릭터만 즐기면 될텐데, 난 왜 굳이 패치를 만들었을까?

 

한국의 현실은 일반적인 현실과 다르다는 생각이, 게임을 패치하면서 강하게 들었다.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서로가 서로를 성적으로 비교한다. 그리고 사회에서까지 끊임없이 경쟁에 시달린다. 결국 사람들은 자신의 약점을 숨기거나 당당한 척을 한다. 그래서 나는 그런 현실을 피하고자 더 포가튼 사가 게임 밸런스에 몰입한 것 같다. 

 

게임 패치는 나만의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적어도 어느 정도까지는 평등한... 조금만 노력한다면 더 나아질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아이템도 어떤 아이템을 선택해도 괜찮을 정도로, 캐릭터도 어떤 걸 선택해도 전투에서 버틸 수 있을 정도로 바꿀 수가 있다. 그걸 완성하는 재미, 그리고 성취감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밸런스 패치는 끝이 없었다. 직업, 성별, 아이템, 몬스터 등 다양한 변수의 밸런스를 맞춰야 했다. 각자 비교해서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꼭 다른 부분을 채워 넣어야 했다. 그리고 게임 내 비어있거나 소외된 다양한 것들을 맞춰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또 다른 버그 혹은 또다른 밸런스 붕괴를 일으키지 않는 지 끊임없이 QA를 해야 했다. 그렇게 10년이 넘는 시간을 써서 겨우 만족할 만한 수준을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왜 회사에서는 밸런스 패치에 신경을 쓰지 않거나 외면하는 지 알게 되었다. 밸런스는 사실 잡으려면 끝도 없다. 다양한 콘텐트들 사이에서는 분명히 과도하게 차이가 나는 것들이 생겨난다. 또, 매출을 위해서 무리하게 신규 콘텐트가 밸런스를 망가트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런 게임들을 계속하는가. 나는 최근에 징기스칸 4 유저패치를 하면서 생각이 든 부분이기도 한데, 유저들은 망가진 밸런스를 극복하는 재미, 혹은 그러한 상황에서 유리한 쪽을 선택해 학살에 가까운 행위를 하는 걸 즐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은 생각보다 게임 내에서 더 잔인하거나 이기적이다. 그리고 그건 경쟁과 갈등이 가장 심한 한국 사회에서는 하나의 도피처가 된다. 밸런스가 맞춰진 게임은 물에 물 탄 듯 밍밍한 게임이 되어 버린다. 

 

또, 게임 패치보다는 자신이 게임을 바꾸고 싶고 아예 신적인 존재가 되고 싶어하는 유저가 많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 뒤로는 더 이상은 유저패치를 만들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포가튼 사가 패치는 그 뒤로는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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