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거의 영화관에 가질 않다가 우연히 어제 꽁으로 영화를 한편 보게 되었다. 그 영화 제목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영화 제목처럼 너무나도 쉽게 머리속에서 사라져 버린 이야기와 남성 중심적으로 짜여진 구성은 나로 하여금 꽁으로 봐도 전혀 고맙지가 않고 사람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해주었다.


▲ 기억이 남는 건 후크송 같았던 차태현의 대사 뿐이었다
출처 : 다음 영화

스토리의 난잡

우선 영화의 스토리는 두 남자의 복수, 그리고 물건을 훔친다는 간단한 내용이다. 하지만 실제 영화를 본 사람들은 그렇게 스토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 왜? 라는 관점에서 저 주인공이 왜 저런 행동을 할까라는 의문이 몇번이고 들었다. 아무래도 이 영화감독은 학교 다닐때 육하원칙을 제대로 공부했는지 의심이 들었다.

그리고 온탕과 냉탕을 반복하는 영화의 진행방향은 대체 웃기려는 건지, 울리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초반에 양씨(이문식)를 죽이면서 급격하게 분위기를 진지하게 만들더니 복수를 하기 위해 사람들을 모을때의 이덕무(차태현)의 모습에서는 어떤 진지한 모습도 얼굴에 보이지 않았다. 깔깔대고 웃던 분위기가 다시 아버지와 이덕무가 재회하는 씬에서 나라를 위해 힘내라는 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애국소년의 진지한 모습으로 되돌아가며 교훈적인 모습을 보여주려한다. 그러더니 영화가 끝날 무렵에서는 다시 이덕무의 밝고 아무 생각없이 웃는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난다.

여기서 질문, 극 중 이덕무는 조증환자인가? 결국 피해자는 이 영화를 끝까지 지켜본 관객들 뿐이다.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억지로 영화안에 막 스토리를 집어넣은 모습이 티가 난다. 결국 영화는 찢어진 그물처럼, 많이 입어서 늘어난 팬티고무줄처럼 쓸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재미와 감동, 교훈을 잡으려고 한 감독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그냥 하나만 잘하라고.

더 한심한건 주인공이 왜 저러는지 도저히 영화를 보면서 알지 못하겠다는 거다. 이덕무의 아버지가 잡혀갈 때, 단지 정치적 모함이라는 내용빼곤 주인공이 왜 복수를 해야하는지 영화 안에선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다. 적어도 조금의 부연설명이 필요한 부분이었다. 사건의 개연성이 솜털만큼도 짜임새가 없었다. 선과 악의 대립, 그 평면적인 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 아, 그래서 12세 관람가로 된거구나 싶었다. 그 외에도 그 당시 얼음이 왜 그렇게 중요했는지, 얼음 때문에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고 사대부의 잘나가는 양반들이 해쳐먹었는지, 어떤 설명을 기울이지 않았다. 감독은 "그냥 닥치고 봐."라는 메세지로 밖에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다.


▲ 오지호는 추노 때의 연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출처 : 다음 영화

남성시각적인 구성

이 영화에서 쉽게 눈에 안 띄지만 진부한 남성시각적인 내용도 마음에 걸린다. 영화가 복수라는 주제를 내걸었고 자칫 무거워 질 수 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장치를 했는데 그 중 하나는 지극히 남성중심적-여성을 성적 욕망으로 표현하는-사고였다. 우선 영화 초반에 나오는 이덕무와 양씨를 보도록 하자. 양씨는 여자의 누드사진을 품에 안고, 네덜란드 여자를 만나기 위해 서역에 가려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리고 이덕무는 거기에 동조를 하면서 여자 주인공으로 나오는 백수련(민효린)을 쫒아다닌다. 마치 여성을 획득 가능한 전시품으로 묘사하고 있다.

게다가 여자 주인공인 백수련은 극 중에서 어떤 영향을 주지도 못한다. 백동수(오지호)의 여동생으로만 나와서 아무것도 모르고 수줍어하는 모습만 보일 뿐이다. 딱 한번, 잠수를 잘한다는 설정으로 무리하게 몸매를 드러내며-여기서도 성적 표현을 나타내기 위한 장치라고만 생각이 든다-일행을 돕지만 역으로 부상만 입고 이덕무에게 폐만 끼친다. 마치 추노에서의 언년이가 네티즌들에게 민폐로 욕을 먹었듯이 말이다. 그러나 추노에서의 언년이는 스스로 능동적인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백수련은 극중 어떤 부분에서도 자신의 능동성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 외에 극중에서 보여지는 여성캐릭터들은 대부분이 수동적이고, 남성을 위한 소모품이나, 소도구로 나온다. 권력자 옆에서 술을 따라주고, 일행 중 한명인 김재준(송종호)에게 도구로써 당하는 역할이 그들의 한계다. 유설화(이채영)라는 인물이 있긴 하나, 그녀 역시 영화에서 두는 비중은 거의 없다. 그저 관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눈요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요즘 일부 여성들이 남자들에게 바라는 것만 많고 능동적이지 못한 이유도 이런 영화들이 여자에 대한 이미지는 이러하다고 주입시켜주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 민효린은 이 영화에서 눈요깃거리 수준에 불과했다
출처 : 다음 영화

그 외에

그 외에도 영화는 마치 두부를 썰듯이 각 에피소드를 하나씩 끊어가며 영화의 집중도를 낮췄으며, 유쾌하지도 않고 교훈적이지도 않고 감동적이지도 않는 새로운 장르의 영화를 개척했다. 그리고 주인공의 아버지와 관련된 에피소드에선 정치에 대한 불신감만 높이고, 더 웃긴건 니들이 이렇게 하니 우리도 더 나쁜 짓을 한다는 점을 옹호하기도 했다. 비상식과 편법이 가득찬 대한민국을 잘 반영한 영화라 할 수 있다. 공짜로 봐도 이렇게 열불이 나는데 하물며 돈을 내고 보신분들은 마음이 어떨까. 뭐, 실패를 교훈삼아 다른 재밌는 영화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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