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럽고 번잡한 때를 당하면 곧 평소에 기억하던 것도 모두 멍하니 잊어버리고, 맑고 편안한 경지에 있으면 지난날에 잊어버렸던 것도 또한 뚜렷이 앞에 나타난다. 가히 조용함과 시끄러움이 조금만 엇갈려도 마음의 어둡고 밝음이 뚜렷이 달라짐을 알 수 있으리라.
- 채근담
식목일, 나무를 심는 날이지. 예전에는 한국에 민둥산이 많았대. 예전에는 땔감으로 많이 썼으니깐. 그래서 식목일을 만들고 나무를 심는 걸 국가에서 신경을 썼나 봐. 덕분에 우리는 가을에 빨갛게 물드는 산을 구경하고 어떨 때는 등산도 하면서 기분 전환도 해. 나무는 참 고마운 존재지.
이번에 소개할 게임은 식목일 특집으로 준비해 봤어. 건물을 짓고 수입을 얻는 시뮬레이션 게임의 주류에서 벗어나 건물을 부수고 동물을 모으며 자연을 회복하는, 정말 독특하고 재밌는 게임이지. 그렇다고 재미는 없느냐, 그것도 아냐. 전략과 시뮬레이션을 적절히 넣어 게임의 긴장감도 살리고 있지. 이 게임의 이름은 Terra Nil이야.
◼︎ 건물을 배치하고 생산하는 재미
우선, 이 게임은 전략(strategy)게임이라고 설명하는 국외 리뷰가 많아. 전략(戰略)의 한자만 풀어보면 전쟁에서 사용될 것 같은데 말이야. 사실 영어 단어 strategy의 어원은 아테네의 정부 관리들을 뜻하는 스트라테고(stratego)에서 왔대. 국가를 어떻게 운영할지, 즉 운영에 대한 의미도 들어있다고 봐야 할 거야. 그런 뜻이라면 이번 게임과도 닿아있는 부분이 있어.
유저는 오염된 땅을 정화하고 동물을 모아야 해. 이걸 게임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선 점수와 공간으로 유저에게 제한을 줬어. 처음 유저에게 기본 점수를 주고 건물을 지을 때 소비하는 거지. 따라서 유저는 건물을 지을 때 점수에 신경써야 해. 건물 배치를 잘하면 얻을 수 있는 점수도 많아. 땅을 정화하거나, 환경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만들면 점수를 얻어.
이 게임은 그렇게 어렵지 않아. 그래서 자신의 작은 선택으로 조금씩 결과를 만들고, 거기서 오는 성취감이 대단히 만족스러운 게임이야. 처음에 지었던 건물 몇 개에서 성취감이 유저로 하여금 게임을 꾸준히 하는 이유가 되고 마지막에 가서는 모든 지역을 자신이 관리하게 돼. 그리고 크게 만족을 느끼지.
◼︎ 환경 보호 게임이 주는 새로운 자극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로제 카유아 씨가 놀이의 4대 요소를 이야기했지. 그중에 흉내, 모방을 뜻하는 미미크리(mimicry)는 놀이에서 내가 다른 존재를 대신할 수 있다는 뜻도 돼. 그럼, 이 게임에서는 어떤 역할을 맡을까? 바로 환경을 살리는 사람이 되는 거지.
환경을 살리는 게임은 상업 게임에선 찾기 힘들어. 권력, 이성, 힘, 재화 등 유저가 현재 갖지 못한 것을 갖게 하는 게 개발사가 게임 소재로 쓰기 편해서야. 유저들이 그런 걸 좋아하니깐. 그렇다면 이 게임은 매력이 없느냐? 그건 또 다른 문제야. 자극. 유저에게 어떤 자극을 줄 것인가가 상위 단계에서 고민할 부분이지. 이 게임은 충분히 유저에게 자극을 주고 있어.
자극은 무엇이냐? 갑자기 딴소리해서 미안한데, 사람의 몸 부위 중에 가장 약한 부위는 어디일까? 난 허벅지 안쪽 살이라고 생각해. 여기는 아주 조금만 꼬집어도 너무 아파. 근데 엉덩이는 예전에 선생님이 내 엉덩이를 몽둥이로 때린 적이 있었거든. 그래도 덜 아팠어. 맨날 앉아서 수업만 들으니 엉덩이는 자극을 쉽게 느끼지 못하는 거지.
자극은 새로움이야, 새로움. 환경을 되살리는 게임은 그 자체로도 매우 신선한 자극이지. 물론 돈을 엄청나게 버는 게임이 자극은 되지만 흔한 자극이야. 왜냐하면 우리는 성인이 되면 어떤 형태로든 돈을 벌기 때문이지. 그리고 돈을 버는 게임은 환경을 회복하는 게임과 비교할 때 많은 게임이 이미 나와 있고 판매 중이지. 그 새로움에 있어서는 이번에 소개할 게임이 한 수 위야.
내가 가장 크게 와 닿았던 자극은 게임에서 땅을 정화하는 데 썼던 기계를 다시 부수는 행위를 할 때였어. 현실이라면 전혀 말도 안 되지? 기계는 돈이고, 돈은 소중하니깐. 그런데 이 게임은 동물을 모으기 위해선 기계를 부숴야 해. 그리고 동물이 내가 만든 자연에 서식할 때 오는 묘한 성취감. 내가 살면서 도시에서 봤던 광경은 털에 자동차 매연이 잔뜩 끼고 배는 곯아 힘 없이 걸어 다니는 고양이, 차에 치인 비둘기가 다였어. 이런 것만 보다가 게임을 하면 나도 모르게 자극이 와. 그리고 내 허벅지 안쪽 살을 꼭 꼬집는 거지.
◼︎ 마음이 치유되는 게임
잔잔한 음악은 이 게임의 백미야. 내가 만든 자연과 거기에 사는 동물을 감상하고 있을 때 조용히 흘러나오는 음악은 기가 막혀. 게임을 세계를 만든 창조자가 된 느낌도 들어. 갑갑한 도시에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마음이 치유되지.
모바일 버전은 넷플릭스 전용으로 출시해 과금이나 광고가 없어. 게임의 콘셉트와 아주 잘 맞는 거지. 모바일 게임을 하면 자꾸 나오는 광고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경험은 있으리라고 봐. 이 게임은 오직 게임만 생각할 수 있어서 더더욱 힐링이 돼.
게임 시스템과 조작도 나름 갖추었고 콘셉트도 신선하며 힐링이 되기까지 하는 게임이니 이 게임은 빠져들 수밖에 없어. 나도 한번 게임을 열면 최소 30분은 다른 걸 못 하고 잡게 되더라고. 예전에 심시티 계열 게임을 할 때 중독성을 여기서 또 느꼈어. 대신에 물질에 대한 욕망보다는 빨리 이 땅을 정화해서 동물을 보고 싶다는 아주 맑은(?) 느낌이었지.
◼︎ 남아공의 인디 개발사, 부럽다
이 게임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디 게임 회사 Free Lives라는 곳에서 만들었어. 이 게임을 만든 팀원은 총 3명이야. 회사 설명도 아주 재밌어.
Free Lives are a team of teenage anthropomorphic turtles, led by their anthropomorphic beard wielding rat sensei in honing and perfecting their art of game jam jitsu to battle bills, pants, petty criminals, evil overlords and alien invaders. They met in the storm sewers of Cape Town, where they bonded over a love for dank accommodations, consuming copious amounts of pizza and remaining isolated from society-at-large.
번역기로 번역하면
Free Lives는 의인화된 수염을 휘두르는 쥐 선생이 이끄는 10대 의인화된 거북이 팀으로, 청구서, 바지, 사소한 범죄자, 사악한 대군주 및 외계인 침략자와 싸우기 위해 게임 잼 기술을 연마하고 완성합니다. 그들은 케이프타운의 빗물 하수구에서 만났고 그곳에서 축축한 숙박 시설에 대한 사랑으로 결속을 다지고 엄청난 양의 피자를 먹고 사회 전체로부터 고립된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얼마나 엉뚱하니? 저번에 소개했던 체코 회사는 강아지를 팀원이라고 올리지 않나. 아무튼 기발한 게임을 만드는 곳은 이렇게 엉뚱한가 봐. 난 한국에도 이렇게 기발하고 엉뚱한 회사가 성과를 냈으면 좋겠어. 물론 외국과 우리의 토양을 비교하면 참 힘들지. 한국은 돈만 쫒는 사회 풍토나 언론의 문제, 노동관, 직업이나 진로에 대한 편협함 등 고쳐야 할 점이 많아. 그걸 생각하면 오히려 저런 회사가 한국에 세워지는 건 기적일 수도 있어. 하지만 누구나 꿈은 꿀 수 있잖아? 난 한국 모바일 게임도 리뷰하고 싶어... 정말이야.
오늘 리뷰는 여기까지. 다들 읽느라 고생했어. 기온이 벌써 낮에는 20도를 넘네. 오늘은 동네에 벚꽃이 활짝 피었더라구. 공부하거나 일하다 힘들면 가끔 창가를 쳐다보자. 자연은 항상 우리 옆에 있으니깐. 힐링 좀 하자고. 다음에 봐~
#링크
- 앱스토어(넷플릭스 회원)
https://apps.apple.com/kr/app/apple-store/id1643974911
- 플레이 스토어(넷플릭스 회원)
https://play.google.com/store/apps/details?id=com.netflix.NGP.TerraNil
- 스팀
https://store.steampowered.com/app/1593030/Terra_Nil/
#출처
https://freelives.net/terra-nil/
https://m.blog.naver.com/eternity9us/221778183525
https://toucharcade.com/2023/03/29/terra-nil-mobile-review-netflix-graphics-performance-ipad-pro-iphone/
#이 글은 2023년 3월 30일에 얼룩소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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