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있을 때 일본 경찰관이 이유 없이 나를 붙잡고 안 놔준 적이 있었다. 안 그래도 알바하러 가기 바빠 죽겠는데 어디서 왔는지, 일본어는 잘하는지 확인하고 외국인 등록증을 체크하더니 경찰서까지 나를 끌고 갔다. 단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을 뿐인데. 머리를 쓴다고 막 경찰서가 신기한 척 바보인 척 연기했었다. 진짜 무서웠었다. 그게 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풀려났다. 그리고 아무 이유 없이 내가 한국인처럼 보여서 잡아갔다는 걸 뒤늦게 알고 분노했었다. 그런데 웹 사이트에서 나와 같은 경험을 한 한국인들이 비슷한 내용으로 글을 올린 걸 알게 되었고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동시에 일본의 혐오 정서를 느끼고 이 나라에 있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유학 시절이 끝날 때까지 일본에서 지긋지긋하게 한국인을 혐오하는 일본인을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봤다. 도쿄에서든, 오사카에서든.
프랑스에 갔을 때는 더 복잡한 심경이었다. 프랑스 여행 중 지하철에 앉아 있었는데 흑인 한 명이 나를 쳐다보더니 갑자기 내 앞에서 때릴 듯한 행동을 했다. 나는 무서워서 도움을 요청했고, 백인 여성분이 오더니 그를 제지했다. 흑인 남성은 백인 여성과 실랑이를 벌이다 여성의 뺨을 후려쳤고, 여성의 안경은 지하철 선로로 떨어졌다. 두 명은 결국 경찰서 비슷하게 보이는 곳으로 갔다. 알고 보니 당시 프랑스는 저 임금 노동자를 아프리카에서 대거 유입했었고, 그 사람들은 프랑스 내에서 임금 및 문화적 차별로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차별에 대한 불만을 또 다른 차별로 나에게 푼 게 아닐까라고 짐작했다. 아무튼 그 이후 나는 프랑스는 절대 여행을 가지 않는다.
최근 한국 극우 파시스트가 법원을 습격해 폭동을 일으킨 사건이 있었다. 건물 외벽을 부수고, 창문을 깨트리고, 사람의 머리를 때리고, 머리채를 잡아당기고, 단체로 사람의 몸뚱이를 짓밟고, 침을 뱉었다. 폭력으로 나라의 법을 완전히 무시하는 초월적인 모습을 보고 나는 이 나라도 결국 내가 경험했던 나라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변질되어 가는 걸 느꼈다. 그리고 파시스트 폭도들이 중국인 여성 관광객을 단지 중국인이라고 폭행한 걸 보며 내가 경험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아마 저분들은 한국에 다신 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최근에 스님과 신부님이 나와 대담하는 유튜브를 봤는데, 삶을 회피하지 말고 다 내 탓이라고 생각하는 삶의 자세를 가지라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지금 벌어지는 일들은 내가 회피해서 일어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10년 초반에 극우 세력이 등장했을 때, 나는 단지 그들을 인터넷에 있는 조금 이상한 사람이라고 치부했다. 그리고 중반과 후반에 들어서는 대놓고 혐오를 조장하는 내용이 인터넷에 게시될 때도 그러려니 했다. 그런 곳을 피하고 무시하면 자연스럽게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은 인터넷 커뮤니티 대부분의 사람이 극우화되었다. 어디를 가도 어떤 세력은 사라져야 하는 극단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게 한다. 마치 좀비를 대하듯이, 마치 벌레를 대하듯이 이야기한다. 게임 속 사람을 죽이듯 실제 상대방을 멸칭한다.
게임이란 단어가 나왔으니 게임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는데, 한국 게임 시장 관련해서도 정말 할 말이 많다. 간단하게 말하면 지금 한국 게임 시장은 선정성과 폭력성, 도박성 없이는 게임이 나오지 못하는 곳이 아닌가 싶다. 게임 업계에 그래도 어느 정도 발 담그고 있었던 사람 입장에서 말할 수 있는 부분은 한국 게임 시장은 이미 세계 기준에 한참 벗어났다는 점이다. 게임 시장 분석을 회사에서 2015년부터 했었는데, 이미 그때부터 나는 한국 모바일 게임 시장에는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재미가 없고, 단순히 중독이 되는 내용으로 어떻게 하면 돈이 될까만 고민해서 만든 제품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가구 유해 기준이란 게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나무로 된 가구는 목재의 원가가 비싸기 때문에 저렴한 가구는 나무 톱밥을 접착제로 붙여 가구를 만든다. 그런데 접착제가 워낙 독하다. 폼알데하이드라는 성분이 들어가는데 발암물질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발암물질이 있는 접착제가 얼마나 들어갔는지 그 비중을 따져 E0, E1 등으로 구분하고 관리한다. 문제는 한국 기준과 세계 기준의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내가 가구 전문가가 아니라 정확히는 말할 수 없지만 유럽이나 미국 기준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는 독성의 가구를 한국에서는 그래도 괜찮다고 사용한다. 최근에는 조금 더 규제가 생겼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새집증후군이나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결국 자본의 논리로 사람들의 건강과 안전에는 덜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헐벗은 사람들과 뽑기(가챠), 이걸 제외하면 지금의 주류 한국 게임은 어떤 걸 내놓을 수 있는가? 그리고 상대를 하나의 성적 소유물로 표현하는 게임을 단순히 게이머의 자유나 권리로 포장해서 그들에게 제공하는 게 옳은 것인가? 더 낮은 가격의 가구를 살 권리를 소비자에게 주기 위해 더 독성이 심한 가구를 써도 되는가? 나아가면 더 많은 임금을 주기 위해 52시간 이상 더 많은 노동을 할 자유를 줘도 되는가? 우리는 게임을 통해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가? 거기에 걱정하는 게 그들의 자유를 막는 것이 된다고 볼 수 있는가?
게임, 그리고 게임 커뮤니티의 논리, 그리고 그 게임 커뮤니티 사람들이 만들고 생성한 파시스트의 논리 역시 비슷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내가 만들고 싶은 게임이 현재 상황에서 그렇게 중요한지 의문이 들었다. 게임을 처음 만들고 싶었던 이유는 단순히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어서였다. 최근에 들어서는 내가 만든 게임으로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어졌다. 지금은 게임을 만드는 것보다 우리가 지금 맞닿아 있는 세상이 더 나은 방향으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게임은 잠시 내려놓자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최근에 계속 올렸던 유저 패치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찾아보면 쉽게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그게 뭐가 되든, 어떤 일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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