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잘 잡시다

일상 2025. 2. 10. 08:33

나이를 점점 먹고 나니 게임을 해도 감흥이 없다. 이제 중독이 없는 게임은 못하겠다. 10년 전쯤만 해도 웬만한 인디 게임은 다 소화하고 리뷰까지 썼던 경력이 있는데 왜 이렇게 되었나 싶다. 예전에 교수님 말도 생각이 나고, 한편으로는 내가 정말 게임을 좋아했던게 맞나 싶다. 

 

와이프랑 있으면 내가 게임에서 얻으려고 했던 안정이나 행복을 "진짜"로 얻게 된다. 아무리 게임이 AI의 힘을 빌려 진짜처럼 보인다고 해도 그것은 진짜를 가장한 데이터들이다. 0과 1을 나열하면 얻게 되는 전기 회로의 일종이란 말이지... 그럼 내가 게임으로 얻으려 했던 것은 무엇인가, 왜 미친 사람처럼 패치를 10년 넘게 만드려고 했던가? 잘난 듯이 전에 을 쓰긴 했지만 뭐 그렇게 큰 이유는 없었을 수도 있다. 그저 외로웠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오늘 갑자기 들었다. 

 

어제까지 징기스칸 4 유저 패치를 만들었는데 그 이유도 엉망이었다. 얼마 전에 게임 개발을 하려다 다른 쪽으로 방향을 돌리자, 게임 리뷰를 써보자고 마음을 먹었다가 흐지부지됐었다. 습관이라는 단어를 나는 좋아하는데 아주 어릴 때부터 몸을 혹사할 때가 많았고 그러면 쓸데없는 인터넷 탐방을 많이 했었다. 그리고 그 습관이 저번 회사에서 일본에 갔을 때부터 다시 발현되었다. 담배 냄새가 지독한 방에서 잠이 오지 않아 휴대폰을 억지로 잡았는데 그게 또 트리거를 당긴 거지.

 

어쨌든 그 습관때문에 너무 노니깐 이야, 이러면 안 되겠다 패치라도 만들면 집중을 하지 않을까 해서 패치를 만들었다. 도서관에서 한 3시간 쉬지도 않고 작업을 했다. 그랬더니 또 허리가 너무 아파서 몇 일을 고생했다. 도서관 의자는 등받이가 너무 약해! 그리고 젊었을 때는 한 10시간 쉬지 않고 집중해도 됐었는데 이젠 그렇게 하니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 그렇게 몸이 골골되도록 아프니 또 잠이 안 오고, 잠이 안 오니 부정적인 생각들이 막 떠오른다. 다들 인생의 풍파가 많겠지만 나도 그런게 좀 있다. 바닷가에 튀어나온 돌부리가 있으면 거기에 파도가 철썩 튀어오르는 거 마냥 나쁜 기억이 철썩 철썩 내 뇌를 때린다. 그게 또 잠이 안 올때는 불쑥불쑥 제어가 안 된다.

 

그러다 어제 와이프와 함께 잠이 드는데 다시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했던 기억을 떠올랐다. 혼자 있을 때라면 몇 일을 더 괴롭혔을 수도 있다. 와이프 배에 잠을 잘 자라고 토닥토닥해주며 자는데 내가 왜 이런 쓸데없는 기억을 하고 있나, 이 친구와 함께 재밌게 살아야 하는데 하고 마음을 먹으니 잠이 잘 왔다. 어렸을 때부터 지독하게 일찍 일어났었는데 어제는 무려 9시간이나 잤다. 내가 살면서 잠을 7시간 이상 자기가 힘들었는데 이렇게 푹 잤더니 걱정 근심이 다 사라졌다. 

 

최근에 모 대학에 강의를 갔는데 그 학생들에게 쓸데 없는 이야기만 한 게 아닌가 싶다. 잠을 푹 자라! 컴퓨터를 보지 말고 휴대폰을 끄고 잠을 자라, 그리고 전제 조건이 있는데 함께 의지할 사람을 옆에 둬라! 이것만 되어도 게임 공부 이전에 사람으로서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했어야 했나 싶다. 내가 근 몇십 년을 컴퓨터, 휴대폰, 게임과 함께 인생을 보냈는데 그 애정의 대체제들은 결코 나에게 안식을 주지 못했다. 행여 불안이 더 했으면 더 했지... 그리고 이번 경험을 하고 났더니 게임 제작에도 회의가 생긴다. 게임은 물론 중독 물질이 아닐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그런 경험을 했는데, 다른 사람들한테도 그런 경험을 줄 수 있는 물질을 만드는 게 옳은 일인지 의문이 든다. 하지만 이 일을 안 하면 나는 뭘 먹고 살아야 하나.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이제 이 쪽 분야에 발을 너무 깊게 담가 버렸다! 뭘 하면 좋을까. 하고 싶은 대로 살아왔었는데 나이가 나이인지라 슬슬 고민이 되면서도 또 이러다 내키는 대로 살 것만 같다. 어제 끓인 카레나 먹으면서 정신을 좀 챙겨야 겠다.

Posted by 얀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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