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환경 모임에 다녀왔다. 와이프 추천으로 갔던 곳인데, 조그만 책방에서 사람들을 모아 이야기를 나눴다. 주최자는 서울에서 여기로 온 지 1년이 안 되었고, 무슨 업계의 인증을 받아 이 곳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라고 한다. 이 모임의 특징은 느슨한 관계라고 하며 이것저것 물어보지도, 서로 끈끈한 관계를 유지할 의지도 없어 보였다. 

 

내 좁쌀만한 심보로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몇 개가 있다. 그 분은 환경을 대변하면서 미국 유명 업체의 주식 이야기나, 환경 파괴에 큰 영향을 주는 낙농업계에서 만든 미국산 아이스크림 이야기를 '아이스 브레이킹'(낯선 분위기 바꾸기)이라며 이어갔다. 그리고 연대를 느슨하게 할꺼면 그냥 줌으로 만나도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게 다 맞는 것도 아니고, 저 분이 어쨌든 좋은 이야기를 하시는 거니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사람이 좀 못 배워서 그런 걸 수도 있는데 내가 꽤 긴 시간 경험했을 때 어떤 분들은 정말 그 일이나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게 아니라 단순히 자신의 장식물로 무언가를 획득하기 위해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 나처럼 정말 찐으로 게임 패치에 환장해서 그 시간을 있는 그대로 쓰는 게 아니라 자신이 그런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행동해서 성취하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을 난 많이 봐 왔다. 물론 위의 사람이 그렇다는 건 아니다. 그냥 그 때의 생각이 나는 트리거가 됐을 뿐이다. 

 

이건 가식이나 위선과는 다른 문제다. 사실 가식, 위선 이런건 뭐 어쨌든 나쁜 것보단 앞에서는 착하려고 노력하는 게 좋은 거 아니냐. 나는 가식이나 위선 자체도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어떤 사람이 자기가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런 사람으로 보여지기 위해 일을 하는 것, 이렇게 말하면 또 위선과 같지 않냐고 하겠지만 어떤 일을 할 때 전혀 그 일을 좋아하지 않아 보이는 사람이 그러면 나로써는 같이 무언가를 할 수가 없다. 이런 사람은 결국 자신이 원하는 걸 얻으면 금새 달라질 걸 아니깐. 

 

사실 뭐 우리 사회가 그런걸 부추긴 면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공부도 싫은데 공부하는 척을 해야 하고, 사람도 싫은데 사람들하고 잘 지내는 척을 해야 한다. 하나의 잣대를 만들고 거기에 A등급부터 F등급까지 나눠버리는 빌어먹을 한국 교육과 사회가 문제다. 그놈의 줄세우기. 그렇다고 해도 그 줄서기를 생각없이 따르고 신봉하는 사람들도 문제다. 그런 식으로 사는 사람은 만나보면 껍데기만 느껴진다. 그건 가식과는 또 다른 문제다. 그냥 비어있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그리고 그런 점은 나도 있을 수 있다. 이 사회에서 살아가면 자연스럽게 공기마냥 흡수하게 되니깐.

 

그러고보면 게임의 역할 놀이를 우리 사람들이 현실에서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가정에서는, 직장에서는, 단체에서는 다들 어떤 자리에서 역할에 충실하게 성격과 감정을 표현한다. 첫째, 막내 등의 표현이 TV에서 소모되고 사람을 규정한다. 그 많은 올가미 속에서 사람은 발버둥치다 이내 체념해서 그렇게 호흡하며 살게 된다. 그리고 남는 건 또 어떤 역할을 맡아서 하게 될까, 옳고 그름은 없어지고 그저 내가 더 비중있는 역할을 맡고 싶다는 생각만이 남는다. 

 

지금 우리 사회에도 그 역할에 심취한 사람들이 여럿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나는 이래야만 한다. 혹은 어떤 것을 극렬히 반대한다는 목소리는 매우 무섭게 쏟아진다. 나는 그 역할이 없으면 쪼그라드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게임에 중독되어 있는 어떤 사람의 모습과 흡사한 감정을 느낀다. 서북청년단은 그렇게 만들어졌을까? 2010년 초반 인터넷 대혼란 속에서 그들을 배척하고 비난했더니 돌아오는 건 더 큰 증오와 또 다른 증오 세력의 등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증오의 총량이 어느덧 나라를 망하게 하는 임계점에 도달했구나라는 걸 느낀다. 그 역할놀이에 취해 남는 건 재뿐인 불나방 같은 사람들을 보며 내가 봤던 그 활동가뿐만 아니라 나를 포함한 한국 시민 모두가 게임 속 역할 놀이를 하는 것 같은, 친숙하면서도 현실에 있어선 안될 것 같은 서늘한 무언가를 느꼈다.

Posted by 얀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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